본문 바로가기

프랑스/파리

D+97│로댕 미술관, 오귀스트 로댕│Musée Rodin, Auguste Rodin



조각 미술관 Musée Rodin에 갔다.



1908년, 오귀스트 로댕은 비론 호텔(Hotel Biron)의 일부 객실을 임대해서 살았다. 그는 자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구매한 뫼동(Meudon)의 소유지에서 주민으로 살았고,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소개하기 위해 매일 파리에 왔으며, 비론 호텔을 이용했다.

1916년, 자신이 사망하기 일 년 전, 조각가는 그의 모든 작품와 전재산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그 대가로, 정부는 1732년의 훌륭한 로카이유 양식의 건축물인 비론 호텔을 로댕 미술관으로 변화시키기로 약속했다.

1919년, 파리 지역에서 일반에 공개했고, 1948년에 뫼동의 로댕 미술관을 공개했다. 국립 미술관은 노력이 인정된 로댕의 업적과 조각품을 이용하고 전파한다. 로댕 미술관은 공공 시설이며, 설사 자신의 자본으로 투자했더라도 모두를 위한 기능을 한다.



때는 2016년 5월 22일 일요일, 오후 5시 17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폐장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시각에 로댕을 만나다.



파리 7구의 바헨느 가(Rue de Varenne) 77에 로댕 미술관의 입구가 있다. 커다란 정문은 열려 있었고, 마련된 임시 천막 안에서 가방 검사와 금속탐지기 검사를 받아야 했다. 천막 우측에 있는 건물이 매표소와 기념품 샵, 그리고 상설 전시를 겸하고 있다.



시작부터 썩 기분 좋지 않은 일들이 이어졌다. 티켓에 날짜 도장을 찍어주는 흑인 여성 직원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무기력했고, 상설 전시에서 나오던 한 중국인 남성은 문을 세게 밀어 나를 다치게 했다.



들어선 로댕 미술관은 또 눅눅함에 숨통을 조여 왔는데, 이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불쾌한 감정들이 사라져 갔다.



작품을 하나하나 감상하고, 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날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끼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댕 미술관은 무언가 특별함이 깃들어 있다.



큰 의미 없이 찾은 곳이었는데, 왜 수많은 영감이 피어오르는지 잘 모르겠다. 신비로운 곳이다.



공간에 비해 작품이 많아서 마지막에 가니 창고 느낌이었지만, 가득찬 작품들 속을 거닐은 짧은 시간이 큰 가치였다는 것을 느낀다.



능력에 비해 쉽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던 로댕, 그의 인생에 공감과 희망을 보았다. 로댕은 미켈란젤로에게, 그리고 나는 로댕에게서.

  • 기증은 말이 쉽지 실천은 정말 쉽지 않은데요. 로뎅, 멋진 분이군요.

    • 롤랑존님 안녕하세요! :)

      저도 그 이야기를 알게 되고, 우리나라에서의 기증은 어떤가 검색해 봤어요.
      한국의 루브르 박물관이라고 떠들썩했던 사례가 있더라구요. 그런데 관리되고 있는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ㅠㅠ
      오히려 프랑스가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게 더 안전하다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안타까운 현실이더라구요.

    • 맞아요. jtbc 비정상회담에서 비슷한 얘기를 들었어요. 빼앗긴 유물을 찾거나 빼앗은 유물을 돌려주는 건 당연하겠지만, 우선적으로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는 말엔 반박하기 힘들더군요.